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애티튜드 시대 (문단 편집) === WCW의 압박 === || [[파일:external/www.lasportsanostra.com/nWo.jpg|width=100%]] || || WWF를 떡실신 시킨 WCW의 전설, '''[[nWo]]''' || 1980년대 WWF는 [[빈스 맥마흔]]이라는 야심찬 인물의 주도 아래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키며 경쟁단체를 물리치고 프로레슬링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헐크 호건]]이라는 불멸의 아이콘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아다시피 [[헐크 호건]]은 경기력뿐 아니라 쇼맨십도 출중해서 모두에게 인기를 끌고 있었고 특히 초등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아이돌급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호건 관련 굿즈 구매층의 상당수가 초등학교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더구나 이때 당시의 [[헐크 호건]]의 인기는 라이벌 [[WCW]]의 [[릭 플레어]]와 1, 2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는 말을 안해도 알 것이다.][* 당시 양대 프로모션을 대표하는 두 거물들의 '가상 매치'는 호사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미국]]을 강타했던 [[스테로이드]] 파동은 1980년대의 프로레슬링 붐을 순식간에 사그라들게 하였으며, [[헐크 호건]]의 뒤를 잇게 하려고 생각했던 [[얼티밋 워리어]]는 생각만큼의 흥행력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정확히는 경기력이나 예능감등 모든 면에서 헐크 호건의 대체자 자리를 맡을 수 없었다. 예능감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는데다 경기력이라곤 등장>정신없이 패대기 치고 >카운트 아웃 혹은 핀폴이라는, 원패턴이라고 욕먹던 호건보다도 더 막무가내 무대포 경기력이 전부였으니...]1992년 말에 해고되어 사실상 실패했고, '''WWF의 상징이었던 헐크 호건이 1994년부터 WCW에서 일하는''' 경악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사태는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호건은 1년 동안 WWF를 떠나 TV쇼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WCW가 거액 + 널널한 스케줄로 유혹하자 WCW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충격이 어느정도냐면 현재의 존 시나가 라이벌단체로 이적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충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당시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인해 하마터면 빈스는 교도소에 갈 뻔하기도 했다. 이때 빈스는 교도소에 가면 자신이 살아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WWE를 전국에 방송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프로모터들에게 상당한 원한을 샀기 때문.] ||[[파일:external/www.wwe.com/48_WCW1070.jpg|width=100%]]|| || WWF를 궁지에 몰아넣던 [[에릭 비숍]][* 초반 얼마까지는 그랬었다. WCW는 이 사람의 기획으로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으며 시청률 전쟁에서 WWF를 완벽하게 눌러버린 화려한 업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전반적으로 구시대적 발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 이런 상황에서 WWF는 그 대안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레슬러들인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 특히 이 당시의 브렛 하트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정에 다다랐다. 경기력과 마이크워크도 준수해서 헐크 호건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꿔주고 있었다. 특히 경기장에 들어선 후 어린이 관중에게 자신이 착용하고 있단 선글래스를 씌워주는 연출로 아동들의 인기도 늘려갔다.], [[사이코 시드]]와 [[스캇 홀|레이저 라몬]] 등을 내놓았고, 이러한 변화 속에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언더테이커]]와 지금은 [[케빈 내시]]로 유명한 디젤 등의 스타도 탄생했다[* 언더테이커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다 못해 파격적일 정도였다. '언데드'라는 컨셉을 가지고 경기중에 선보이는 연출마저 충격과 공포였고 특히 2미터가 넘는 거구가 간간히 선보이는 하이 플라잉 액션은 그야말로 당시까지 알려진 거한 파워맨의 편견을 버려야 할 정도의 혁신적인 것이었다.]. 손에 꼽히는 테크니션인 브렛 하트는 '뉴 제너레이션' 이라 불리운 이 시대의 중심적 아이콘으로 활동하며 WWF를 지탱했고, 역사상 최고의 프로레슬러 중 한 명인 숀 마이클스는 [[WWF 레슬매니아 X]]에서 레이저 라몬과 함께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다리 경기를 치르며[* 레슬링 옵저버 선정 1994년 최우수 경기이자 별 다섯개 경기이도 하다. TV로 방영된 최초의 래더 매치다.] WWF는 이전에 비하여 크게 변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WWF의 경쟁자인 WCW는 [[에릭 비숍]]의 지휘 아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WWF의 중심 선수들을 빼오기 시작했고[* 다만 WCW의 선수 빼가기 자체는 견딜만 했던게, 이미 그동안 WWF를 지탱해오던 중견 선수들의 약발이 다해져가던 시기였고 때마침 치고 올라오던 신진선수들의 활약상도 준수해서 WWF로서는 별 아쉬움이 없었다. 더구나 이때는 헐크 호건이 돌아온다고 해도 왕년의 인기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역시 바뀌어 가고 있었다.], 1996년 역사에 길이 남을 [[nWo]]를 출현시켰고 여기에 더해 '''헐크 호건의 악역 전환'''이라는 사상 최대의 반전 등 성인 지향적인 스토리를 전개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당시 호건의 악역 전환은 아직도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악의 배신이라는 '동심파괴'급으로 여겨진 대사건이었다.]. [[케빈 내시]]와 [[스캇 홀]]이 WCW에 등장한 1996년 6월 10일 부터 WCW는 파격적인 각본에 힘입어 WWF의 시청률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무려 '''83주''' 동안 WWF는 WCW에 시청률 떡실신을 당하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월요일 밤의 전쟁'''(Monday Night Wars)이 시작된 것이다. WWF는 WCW와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하여,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남기 위하여''' 무언가 바뀔 필요가 있었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